🟦조직에서의 의사결정은 왜 이토록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가?
조직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작동한다는 명제는 오늘날 많은 조직이론과 행태론의 중심 명제 중 하나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심리와 집단 간의 역동성, 제도적 제약, 환경의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공공조직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처럼 ‘의사결정’이라는 행위는 절차적 처리에 그치지 않으며, 때로는 조직 전체의 존망을 가를 수도 있는 전략적 선택의 순간으로 기능한다. 우리는 이 결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이론적 틀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행정학과 조직행태론은 인간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지속적으로 분석해 왔다.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한 의사결정 이론은 고전적 이성과 현실적 제약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시도와 철학적 관점을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한 이론들이 바로 합리모형(Rational Model), 점증모형(Incremental Model),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이다.
합리모형은 경제학과 정치학의 전통적 인간관, 즉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한다. 목표가 분명하고, 모든 대안을 탐색할 수 있으며, 완벽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이상적 상황을 전제한다. 이러한 모형은 정책결정과정의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며, 체계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을 중시하는 행정관리론적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실제 조직에서 이러한 ‘완전한 합리성’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비판 또한 수반된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인식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점증모형이다. 점증모형은 정책결정자가 이상적 조건하에서 완전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기존 정책을 소폭 수정하는 방식으로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정책의 연속성과 제한된 탐색을 강조하는 이 접근법은 ‘만족스러운 결정(satisficing decision)’을 현실적인 목표로 설정하며, 공공정책의 점진적 변화 양상을 잘 설명한다.
한편, 조직이 매우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전제를 극단적으로 적용한 이론이 쓰레기통 모형이다. 코헨(M.D. Cohen), 마치(J.G. March), 올센(J.P. Olsen)에 의해 제시된 이 모형은 조직 내 의사결정이 매우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문제, 해결책, 참여자, 선택기회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가, 일정한 순간에 무작위로 결합됨으로써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은 고도로 유동적인 조직, 특히 ‘조직화된 무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공공조직에 적용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세 가지 모형은 의사결정의 본질과 그 복잡성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 합리모형은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고, 점증모형은 현실적 적용성을 강조하며, 쓰레기통 모형은 비구조적 상황에서의 조직 행동을 설명한다. 각각의 이론은 공공행정의 실제 사례와 연결될 때 더 큰 이해를 제공하며, 조직이 처한 환경과 문제 유형에 따라 적용 가능성도 달라진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이론을 중심으로 조직 내 의사결정의 논리와 실제를 비교 분석하고, 각 이론이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의사결정 이론은 행정학의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공공정책, 경영전략,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되며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공공조직에서의 의사결정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모색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곧 조직과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 의사결정 이론의 전개와 실제 적용
1. 합리모형(Rational Model) – 논리적 선택의 이상형
⬛ 정의와 핵심 전제
합리모형(Rational Model)은 조직 내 의사결정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가장 전통적 접근이다. 이 모형은 경제인 모델(Homo Economicus)을 전제로 하며, 모든 의사결정자는 다음의 가정을 따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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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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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모든 대안을 탐색하고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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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안의 결과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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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과를 일관된 가치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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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한다.
이러한 전제는 주로 경제학, 행정학, 정치학의 고전적 이론 속에서 ‘이상적 인간’을 모델로 삼는다. 대표적으로 Herbert A. Simon은 이러한 합리모형에 대한 비판과 함께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 Herbert Simon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Simon은 의사결정자가 실제로는 정보의 한계, 시간의 제약, 인지능력의 제약 속에서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 불렀으며, 현실에서는 최선의 대안(optimal)이 아니라 만족할 만한 대안(satisficing)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고전적 합리모형을 실천 가능하도록 수정한 이론적 전환점이었다.
Simon은 의사결정 과정을 다음과 같은 단계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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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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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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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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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할 만한 대안 선택
모든 대안을 검토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탐색하며, 기준에 부합하는 첫 번째 대안을 선택하는 실천적 접근이다.
⬛ 공공조직에서의 적용과 사례
합리모형은 여전히 정부 정책, 행정계획 수립 등 체계적 분석이 필요한 분야에서 유효한 도구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교통정책 수립, 신도시 개발 계획, 예산 배분 결정 등은 목표 달성도를 수치화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비교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사례: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기획재정부는 중기적 국가재정 운용계획을 수립할 때 다양한 시나리오 분석, 재정수지 전망, 세입 추계 등을 활용하여 최적의 방향을 도출하려 한다. 이 과정은 합리모형의 단계와 유사하게 구성되며, 경제성 평가, 비용편익 분석이 주요 도구로 쓰인다.
⬛ 한계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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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불완전성: 실제 조직에서는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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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자원의 제약: 의사결정 시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보장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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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편향: 인간은 객관적 판단보다는 직관과 습관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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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타협: 공공조직에서는 합리성보다 정치적 교환과 협상이 결정 요인인 경우가 많다.
2. 점증모형(Incremental Model) – 현실적 적응의 논리
⬛ 점증주의의 등장 배경
Charles E. Lindblom은 1959년 논문 「The Science of ‘Muddling Through’」에서 기존의 합리모형이 실제 정책결정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정책결정이 대개 기존 정책을 소폭 수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이를 점증주의(incrementalism)라 불렀다.
Lindblom은 합리모형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보았으며, 실제 정책결정자는 한정된 자원과 정보 속에서 ‘그럭저럭 나아가는(muddling through)’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강조했다.
⬛ 점증모형의 핵심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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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대안 탐색: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지 않고, 실현 가능한 몇 개만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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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정책 유지: 혁신보다 ‘작은 변화’를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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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접근: 목표보다 수단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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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 의사결정: 여러 작은 결정을 통해 전체 방향을 조율
⬛ 공공정책 사례
사례: 보육료 지원 정책의 변화
보육료 지원제도는 대규모 개혁보다 소득구간 조정, 연령 확대, 예산 규모 조절 등 소폭의 변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이처럼 이전 정책을 조금씩 개선하며 새로운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은 점증모형의 전형적 사례이다.
또한, 중앙정부의 지방재정지원 방식 역시 지방교부세의 비율 조정이나 산식 조정 등 점진적인 변경을 통해 정책 환경에 적응한다.
⬛ 장점과 한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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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이고 실행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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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합의를 유도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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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변화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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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 어렵고 현상 유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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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문제 해결에 부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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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의 고착화를 유발할 수 있음
3.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 – 혼돈 속의 결정
⬛ 이론의 등장 배경
1972년, Cohen, March, Olsen은 「A Garbage Can Model of Organizational Choice」라는 논문에서 기존의 결정 이론들이 조직 내 비합리성과 우연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대학, 공공기관, 비정형 조직과 같은 ‘조직화된 무질서(organized anarchy)’ 상태에서는 기존의 논리적 모형들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 네 가지 핵심 구성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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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Problems): 조직 구성원이 인식하는 불만 또는 해결되어야 할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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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Solutions): 이미 존재하지만 적용되지 못한 아이디어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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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Participants): 유동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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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기회(Choice Opportunities): 회의, 공청회, 승인 등의 공식적 결정 시간
이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우연히 서로 결합되는 ‘쓰레기통의 만남’을 통해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 조직화된 무질서(Organized An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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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분명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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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인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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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확한 기술
이러한 특징은 공공조직, 특히 대학, 문화재단, 시민단체 등에서 자주 관찰된다.
⬛ 사례: 대학의 교육과정 개편
A대학교에서 학과별 커리큘럼 개편 논의가 있을 때, 문제는 ‘졸업 후 취업률 하락’, 해결책은 ‘AI융합 전공 도입’, 참여자는 교수, 학생, 외부 자문단, 선택기회는 ‘교무위원회’ 회의일 수 있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예측적이고 임의적 결합으로 최종 결정이 형성된다면, 쓰레기통 모형이 잘 설명하는 과정이다.
⬛ 비판과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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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의 예측 불가능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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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성을 설명하지만, 대안 제시 능력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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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보다는 이론적 설명력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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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조직의 유연성, 창의성 이해에 활용 가능
4. 모형 간 비교 및 종합 분석
구분 | 합리모형 | 점증모형 | 쓰레기통 모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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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 | 전면적 합리성 | 만족한 선택 | 우연적 선택 |
대안 탐색 | 전면적 | 제한적 | 무작위적 |
환경 인식 | 안정적 | 점진적 변화 | 혼란과 유동성 |
적용 대상 | 계획·분석 중심 조직 | 관료제, 정책기관 | 대학, 문화기관 등 유동적 조직 |
장점 | 체계적, 목표지향 | 현실적, 실현가능 | 비정형 조직 설명 |
한계 | 비현실적 전제 | 보수적, 혁신성 부족 | 설명력은 있으나 예측력은 낮음 |
이러한 비교는 조직의 특성, 문제의 복잡성, 참여자의 유형에 따라 어떤 모형을 적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실질적 기준이 된다.
🟪 복잡한 선택의 시대, 어떤 결정이 바람직한가
의사결정이론은 행정학과 조직행태론의 중심에 놓인 주제 중 하나다. 공공조직은 기술적 기계장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사회적 유기체이자 정치적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요인들이 작동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합리모형, 점증모형, 쓰레기통 모형은 각각의 전제와 구조를 바탕으로 조직 내 의사결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조망한다.
합리모형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이상형’으로 기능한다. 공공정책이 추구해야 할 기본 원리, 즉 최적의 선택이라는 목표를 부여한다. 충분한 정보와 명확한 목표, 체계적인 비교를 통해 최고의 선택을 추구한다는 이 접근은 기술관료적 조직의 기획, 전략 수립, 예산 편성과 같은 구조화된 환경에서 특히 유용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하고, 최적의 대안을 찾아 실행할 수 있는 여건은 매우 제한적이다. 결국 이 모형은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학문적 지침으로 작용한다.
이와는 달리 점증모형은 현실의 ‘제약 조건’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모색한다. 시간도, 정보도, 자원도 제한된 상황에서 조직은 종종 이상적 해답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해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점증모형은 공공조직이 어떻게 정책을 수정하고 적응하며 진화해 나가는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실제 정책 현장에서는 장기 전략보다는 단기 대응, 대담한 혁신보다는 점진적 조정이 중심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점증모형은 조직행동을 실질적으로 설명하고, 정치적 합의와 타협의 과정을 반영할 수 있는 실용적 이론으로 기능한다.
반면 쓰레기통 모형은 완전히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복잡하고 목표가 모호한 조직, 특히 대학이나 공공기관처럼 ‘조직화된 무질서’ 상태가 자주 발생하는 조직에서는 합리적 설명이나 점진적 구조도 적용되기 어렵다. 쓰레기통 모형은 네 가지 요소 – 문제, 해결책, 참여자, 선택기회 –가 독립적으로 떠돌다가 우연히 결합될 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과감한 통찰을 제시한다. 의사결정이 마치 패턴이나 논리가 아니라, 변수 간의 충돌과 만남에 의해 결정되는 ‘사건’처럼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조직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세 가지 모형은 각기 다른 인간관과 조직관을 전제로 한다. 합리모형이 전면적 합리성을 전제한 반면, 점증모형은 만족 가능한 수준의 현실을, 쓰레기통 모형은 아예 예측 불가능한 유동적 행동을 중심에 둔다. 결국 조직행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관점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상황에 동일한 의사결정 모형을 적용하는 것은 이론을 현실에 강제로 꿰맞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오히려 조직의 역동성과 유연성을 해칠 수 있다.
오늘날의 공공조직은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정책 분석, 시민 참여 확대, 데이터 기반 거버넌스 등은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와 참여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더 많은 혼란과 예측불가능성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일한 결정 이론으로는 조직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기 어렵다. 그만큼 다양한 이론을 통합적으로 활용하고, 조직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데이터 기반 합리모형이 재조명되고 있고, 행정 개혁의 측면에서는 점증주의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다양한 의견과 비정형적 이슈가 충돌할 때는 쓰레기통 모형적 해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공공행정의 실무자와 이론가는 이 세 가지 모형을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보완적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조직의 의사결정은 더 이상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 체계이며, 그 과정은 이상과 현실, 규범과 절차, 인간성과 비합리성 사이의 끊임없는 균형 속에서 이루어진다. 행정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머무르지 않고,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결정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까지 통합적으로 성찰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현대 행정학이 갖춰야 할 이론적 깊이이며, 의사결정 이론이 행정학 내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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